민권운동과 함께 베트남전쟁 반대 운동이 거세게 몰아치던 1968년. 미국 정부는 베트남전쟁 지속 정책을 고수하며 파병 병력을 7만 5천 명에서 12만 5천 명으로 늘리고 징집 규모도 월 1만 7천 명에서 3만 5천 명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발표합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18세~24세의 남성 38만 2,386명이 징집되었습니다.
그리고 1968년 8월, 시카고에서 민주당 제35차 전당대회가 개최됩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베트남전쟁 종전이 아닌 지속을 공약한 후보를 선출한다는 소식에 분노한 청년, 학생들과 시민들이 시카고로 달려가 민주당 전당대회장 앞에서 시위를 하기로 합니다.
시카고 당국은 집회를 원천적으로 불허하고 일리노이주 방위군 5천 명과 폭동진압팀을 포함한 시카고 경찰 1만 명을 투입합니다. 결국 민주당 전당대회를 기해 평화롭게 시작했던 반전 시위는 경찰 및 주 방위군과 대치하는 폭력 시위로 변하면서 7명의 시위 주동자 소위 ‘시카고 7’이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됩니다.